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책의 무게
    빈짱의 일상글 2020. 3. 16. 14:00
    728x90
    반응형

    책의 무게

     

    Photo by  🇸🇮 Janko Ferlič  on  Unsplash

     

     

    몇 주째 주말에는 거실에서, 책상이 있는 내 방에서 또는 침대 이불속에서만 보내며

    드센 전염병으로부터 몸을 피하고 있었다.

     

     

    이번주는 꼭 어디론가 나가야겠다는 아내의 주장이 있어, 함께 차를 끌고 근처의 쇼핑몰로 마실을 나갔다.

     

     

    전염병의 영향인가, 주중에 한 번 들렀던 때보다는 사람이 붐비는 모양이었지만

    아무 일 없는 어느 주말과는 다른 쾌적한 실내의 모습에 숨통이 트이다가도 답답하다가도.

     

     

    우리 부부는 쇼핑몰에 오면, 공동의 필수 목표(장보기, 영화 관람 등)가 없다면 자유롭게 

    서점, 스파브랜드 등을 돌아보는 편이며 때로는 서로의 목적이 다를 때에는 가볍게 행선지를 이야기하고

    잠시 떨어져 각자의 취향에 맞는 가게를 구경하다 다시 합류하고는 한다.

     


     

    오늘뿐 아니라, 내가 자주 그리고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곳은 서점이다.

    회사에서 지원하는 도서 구매비용 덕분에, 눈길이 가는 책은 쉽게 골라 읽어볼 수 있는 형편이 된다.

     

    '무언가 좋은 책을 고르러 나왔다.' 는 느낌으로 서점 안을 한번 훑어보다가,

    마음에 드는 책 제목이 있으면, 어떤날은 내용을 살펴보지도 않고 덥석 사버리는 날도 있다.

     

     

    오늘은, 한 바퀴를 돌아봐도 썩 마음을 끄는 책이 없다.

    언젠가 나도 내 글을 엮어 책을 내는 날이 올까? 생각해보면 절대 오지 않을 거라 질색하게 되지만.

    출판이 예전만큼 어렵지 않다는 말이 들려오고부터는 정말 다양한 주제의 책들이 서가에 진열되어 있다.

     

    '삼십 대 백수 = 삼백쓰'라고 본인을 표현한 한 작가는, 블로그에 일기처럼 써 내려간

    30대 중반 백수인 삶을 어떻게 할까 고민했던 나날들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져 놓여있기도 하고.

     

    나는 고유의 색을 발견하는데 꽤 고전 중인 시장이지만, 유튜버 구독자 100만 명 만들려면

    나만 따라 하면 된다고 자신만만한 책 제목으로 시선을 끄는 책도 매번 눈이 간다.

    (하지만 사서 볼 만한 가치가 있을까 싶은 생각에 펼쳐본 기억은 없다.)

     

     

    마지막으로 발길이 간 곳은 '인문학' 코너.

    '죽음', '고전 해설', '공부의 철학' 등 여러 가지 인문학에 대한 책들이 꽂혀있는 선반 앞에서 한참 동안 제목들을 살폈다.

    '패스트푸드 인문학'이라는 책이 있길래, 내가 좋아하는 '빅맥'으로도 인문학을 논할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이

    여기 있구나! 싶어 뽑아 들었더니, 패스트푸드를 먹는 것만큼 쉽고 빠르게 인문학을 알 수 있다는 선전문구로서

    패스트푸드를 책 제목에 가져다 붙인 도서였다. 그럼 그렇지. 

     

    내 시선을 기준으로 눈 앞과 그 위, 아래단을 주로 살펴보다가 저 맨 아래칸에 꽂힌 눈에 띄기 힘든 칸에는

    어떤 책들이 꽂혀있을까 궁금해져 허리를 숙였다가 이내 쪼그려 앉았다.

     

    돌아서서 잊는 깊이 없는 사람이 나라고.

    몇 번을 곱씹어 돌아봐도, 백발의 중년이 책 커버에 나와있었고 일본의 유명한 교수이자 인문학자인 분이

    저자라고 했던 홍보문구와 책의 표지 이미지는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있는 정도이고 그 외에 제목을 특정할 수 있는

    단서는 어느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련히 남아있는 표지 이미지와는 대조적으로 아직도 생생한 감각으로 기억하는 건, '책의 무게'.

    무슨 종이를 쓰면 책 한 권이 이렇게 두꺼울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두께에 보기 드문 무게였다.

    그리고 그 무게에 압도당해, 책 표시만 슬쩍 살펴보고는 도로 꽂아놓고는 서점 구경을 마쳤다.

     

     

    '가볍다.' '무겁다.' 물리적 무게 말고도 책이 담아낸 콘텐츠에 대한 말들이 참 많다.

    무게가 가벼운 시집 또는 에세이집이 서점 입구 켠에 많이 진열되어 있었던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들춰보고 한 권 집에 가져가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상대적으로 가벼워 보이는 매일의 일상을 적어 내려 간, 담담히 삶을 마주하는 에세이들도

    일하는, 때로는 방황하는 젊은 세대에게 큰 공감을 주는, 그런 시절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내용이 무거운 책'은 왜 무게도 무거워야 할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강상중 저자가 쓴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에 소개된 '거대한 전환(칼 폴라니 저)'를 야심 차게 

    사 와서는, 반년이 다 되도록 표지한 번 펼쳐보지 않는 나의 허세를 먼저 탓해야 하겠다.

     

    어려운 내용도 쉽게 설명하는 사람이 멋지다.

    하지만 정말 알기 쉬운 내용이기 때문에 설명이 쉬운 것은 아니다.

    어려운 내용도 충분한 이해를 통해 '본인의 것'으로 체화한 다음에야

    비로소 '알기 쉬운 설명'으로서 타인에게 전해질 수 있는 것이다. 

     

     

    어느 날은 내가 이렇게 끄적이듯 써 내려간 글이, 포털 메인에 걸려 뿌듯해할 터무니없는 상상을 하며,

    '글 잘 쓰는 방법', '너에게만 알려주고 싶은 무결점 글쓰기'라는 책들을 사서 며칠을 들여 읽고는 하지만,

    '기술'보다 '내실'이 중요하다는 생각의 계기가 되었다.

     

    어렵지만, 어렵지 않게 책도 삶도 쉽게 풀어낼 수 있는 내실 있는 사람이고 싶다.

    728x90
    반응형

    '빈짱의 일상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화장실 철학'  (0) 2020.03.20
    촌평  (0) 2020.03.18
    재택근무  (0) 2020.03.17
    독점(独占)  (0) 2020.03.15
    정리하는 습관  (2) 2020.02.10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