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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어른인가? - 어린이라는 세계(김소영 에세이)빈짱의 일상글 2020. 12. 20. 18:00728x90반응형
김소영 님의 에세이 '어린이라는 세계'는 내가 산 책이 아니다.
지난 2월 말 즈음이었던가. 시국이 이렇게까지 심각해질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시작부터 우리 부부는 안전에 만전을 기해왔다.
그럼에도 무엇보다 슬펐던 것은, 먼 곳이 아니더라고 이국(異国)으로 떠나 지친 마음을 채우고 왔던 연례행사, 해외여행을 못 가게 된 것.
마침, 1월에는 회사 일로 미국에도 다녀 올 일이 있어 마일리지도 두둑이 쌓였을뿐더러 회원 등급도 상향되어 라운지 등 부가서비스를 한껏 누릴 생각에 기뻤던 찰나였는데 아쉬운 마음을 나열하자면 끝을 알 수 없을 것이다.
대안 삼아, 11월 결혼기념일 즈음에 제주도 여행을 가기로 하고 마일리지로 항공권을 사 두었다.
이 책은 제주도 여행중에 아내가 읽기 위해 미리 주문한 책이었고, 나는 여행이 끝나고도 몇 주가 지난 지금에서야 책을 다 읽었다.
도입부를 읽어나가면서는 나의 어린 시절을 자꾸 떠올렸다. 내 기억 속의 나는 말수가 적고 조용하며, 부모님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였는데 당시의 부모님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나와 관계를 맺고 지내던 주변의 '어른들'은 나를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저자와 비슷한 시절을 함께 보내온 나는 별반 다르지 않았을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얼굴에 옅은 미소가 올라온 채로, 책의 이야기들과 함께했다.
모두 3부로 구성된 책을 다 읽고 나니, 어린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라고 해서 쉽게 판단할 수 없다고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어린아이가 무엇을 알겠는가'라며 폄하하는 어른들도, 어린이들의 질문에 명쾌하게 답을 내놓지 못한다.
사실, 귀찮은 듯 '너는 몰라도 돼'라며 상황을 모면하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독서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저자의 환경과, 아이들을 아끼는 마음이 만든 '어린이를 대하는 바른 태도'에 대해 많이 이해하고 또 배우는 시간이었다.
'아이가 없는 가족'이라고 해서 책임이 없는 것이 아니다. 물론, 직접적인 육아를 담당하고 있지 않으며 요새처럼 아이들과 직접 만날 기회가 적어진 상황에서는 더 사전 준비가 필요하겠다. 아이들의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알고 있는 나의 모든 지식과 생각을 그들에게 온전히 전달하는 방법을.
개인적으로, 어려운 약어나 전문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부정적이다. 모두 함께 알고있는 용어라는 전제가 붙는 직장생활 중에서도 가끔 갸우뚱하고 물음표가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는데,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표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람을 좋아하며, 닮고 싶어 한다.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도 여기서 시작하면 어떨까.
아직 표현이 서투르지만, 상황에 맞는 적합한(때로는 정확한) 표현들을 함께 공유하고 그들이 이야기하려는 취지를 열심히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 순간, 어른으로서 멋진 답변을 내놓지는 못하더라도 다음 만남에서는 스스로 알아본 이야기들을 친절하게 전달하기로 마음먹는 자세.(물론, 질문을 했던 아이는 쉽게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노 키즈 존'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고, 나도 가끔은 왁자지껄 자기들 세상인 양 가게 안들 누비고 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던 어른이다. 하지만, 잘못된 것은 어른이 바로잡아주어야 한다는 생각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사회의 문제일까, 오지랖이라며 자기 아이를 훈계하려는 어른에게, 부모는 안하무인의 방어자세를 취할 것 같다는 편견이 있어서이다.
이 책에서는 '노 배드 패런츠 존(No Bad Parents Zone)'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되었는데, 말문이 막히는 순간이다. 우리 육아의 환경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뜯어고쳐야 할까. 아이들의 탓으로만 돌릴 것이 아니라, 그 아이와 함께하는 부모. 그리고 그들이 속한 환경들을 전부 살펴보기 전부터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사회의 잣대는 너무 가혹하다.
누구에게 책임을 묻는(=책임을 전가하려는) 생각부터가 '어른스럽지 못한' 태도 아닌가.
천천히 성장하며, 시야기 넓어지고 공간 감각이 생기는 지도 눈치채지 못하고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들은, 어린 시절에 책꽂이 3층 위에는 어떤 책들이 있는지 알고 싶어 아등바등했던 간절함을 잊고 있다. 어른이 되어서도, 왜 크리스마스에는 '나 홀로 집에'를 틀어주며 어른도 어린이도 즐기지 못할 휴일을 보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저자는 어린이들을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 대하고 있다.
그들도 저마다의 몫을 해 낼 구성원이며, 각자가 고유한 상황에 처해 있다. 세상이 바뀌면서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내 건 운동들을 접할 기회가 늘어가는데, 책에서 언급된 '어린이들의 날'같은 행사가 생긴다면 그 모습도 참 좋아 보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다 읽어갈 즈음에는, '어린이가 어른의 길잡이'라는 말에도 많이 공감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좋은 것을 많이 보고, 정확하게 세상을 바라보며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보살펴주는 어른. 그런 어른으로서 나는 얼마나 많은 경험을, 많지는 않더라도 좁은 경험들을 어떻게 바르게 전달하여 그들을 이끌 수 있는 당당한 어른이 될 것인가에 대해 다시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전혀 관계가 없는 '아이들'과 긴 시간을 함께 해 본 경험이 없다. 짓궂은 아이들의 행동을 보면, 마음속에서는 혀를 차며 나무라고 있는 내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거니'하고 넘겨보려고 한다.
내가 그들의 부모이거나, 직/간접적인 관계에 있다고 하여도 아는 아직 아이들이 어렵다. 한편, '어려워한다'는 것은 나름대로 바른 마음가짐이 아닌가 한다. '끝없이 꼬리를 물고 늘어질 것 같은 질문공세에 버틸 자신이 없다', '그들이 좋아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보따리 따위는 없다'는 등, 피할 이유를 만들고 있는 비겁한 어른이기는 하지만, 아이들에게 무례한 어른이기는 싫다.
마음을 열고 더 그들과 함께하기 전에, 나 스스로가 어떤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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